노무현 연설문 저자 최운선 교수의 날카로운 시 입니다. 씹을수록 날카로운 표현이 시로 부드럽게 표현된 시 입니다

우리나눔 미디어 승인 2023.05.04 11:15 | 최종 수정 2023.05.11 16:59 의견 0

늙은 어부
최운선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잔 들어붓고
입가에 고춧가루 두어 점 떼어내니
새벽은 담배연기로 여백인 듯 쓸려간다

살아있어 죽어야 할 숨죽인 고기 떼들
지난밤 사투 끝에 날카로운 날이 서고
집어등 혓바닥 위에 드러눕는 늙은 어부

살을 에는 짠내 속에 그물이 펼쳐지자
허리 펼 겨를 없이 또다시 잡아당긴
풍화된 슬픔 덩어리 선단 위에 쏟는다

꽂잎
최운선

활짝 핀 꽃잎 위에 피어난 삶의 무늬
꽃잎이 지기 전에 향기를 주워 담다
돌담을 넘어온 꽃잎 손바닥에 닿으면

농사에 찌든 하루 깨끗이 씻어내고
가난이 통과되는 아침을 맞이하며
봄향기 수레에 실어 한 사람을 찾는다

연민을 남기려고 사랑한 건 아니지만
어색한 만남 속에 중독된 꽃잎 향기
사랑의 논리를 넘다 떨리는 손 내민다


저울에 올랐으나
최운선

형광 빛 뿌연 안개 시간을 맴돌다가
거울 속 나를 보니 가늘어진 목과 다리
젖은 몸 드러낸 속살 석기시대 변신이다

저울에 올랐으나 뼈만 남은 체관부
체중을 기억 못 해 치욕만 거듭하다
읽어 낸 삶의 무게는 주름살로 스며든다

저작권자 ⓒ THE NANUM TIME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