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방문기 (스페인)

우리나눔신문 승인 2023.02.21 13:20 의견 0

스페인이 지금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봉착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때 국민소득이 높고 주변 환경이 잘 정리되어 있었으며 복지시설도 가장 잘 되어 있었습니다. 중세 가톨릭 성당의 찬란한 문화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그들의 생활 속에 아직도 깊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피카소의 미술, 집시의 춤과 음악, 투우와 축구 등 예술과 스포츠에 열정이 함께 있는 스페인에 호기심을 갖고 혼자 여행 온 경기도의 한 젊은 여교사를 보면서 비록 우리 민족이 키는 크지 않지만 더 큰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인상 깊은 여행이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풍광보다는 언어 혹은 소리로서 기억이 선명해 지는 수가 있습니다. 스페인 여로를 회상하는 지금의 내 의식이 그러한 듯했습니다. 스페인 여행에서 느낀 감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둘러 본 것들은 예술적 문화적으로는 가치를 지니겠지만 종교적으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틀동안의 기내 숙박과 모로코, 포르투갈 일정 이틀을 빼고 정확히 9일 동안 스페인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떤 감회에 젖었던가, 오늘의 과학 기술과 현대인의 예술적 능력으로 판단해도 그 축조 기술과 표현양식이 거의 불가사의의 경지라고 해야 할 만큼 장려함과 정교함이 조화된 성당 등 여러 유적들은 우선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의 축조가 과연 인간 구원을 위한 방법으로서 절대적인 것이었을까-라는 회의를 떨칠 수도 없었습니다.

성당으로 대표되는 이들 스페인의 종교 유산을 둘러보고 나서 외국 관광객이 새삼 확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개인적 편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종교양식의 공간상 공존이 차라리 '위선'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성찰해 보면 그것은 공간에서의 공존일 뿐 시간으로서의 공존이 아니라고 해석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 지배력의 확보를 위해 종교와 종교, 혹은 교회권력과 세속권력이 엄청난 피를 흘리며 긴 세월동안 승리와 패배를 반복해 왔다는 사실이 이들 스페인의 종교유산들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스페인의 복지제도를 살펴보면 1970년대 들어 30여 년간의 독재정치에서 벗어난 스페인은 연금과 무상의료, 출산장려금 등의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정치인들은 부유한 이웃나라를 모델로 삼아 "평생 일한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겠다."며 연금과 무상의료 등의 복지정책을 들여오는데 앞장섰습니다.

세금 액수에 관계없이 모두 '공짜'인 무상의료보험 제도도 들여왔습니다. 스페인의 의료보험의 경우 어떤 환자든 1유로만 내면 공짜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 복지 전문가들은 "실업률이 20%를 돌파한 데다 세금을 내지 않는 노인 인구도 급증해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합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유럽연합 내 신규 일자리의 60%를 책임지던 스페인이지만 6년사이 '유럽의 문제아'로 전락한 셈입니다.

스페인 정부는 2010년 5월부터 강도 높은 재정개혁안을 내놓고 뒤늦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6월에는 공무원 임금 5~15%를 삭감했고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한편 매월 최대 2천5백유로(약 375만 원)까지 지급하던 연금 액수도 줄여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신생아 1명에 2천5백유로 씩 지급하던 출산장려금도 올해 1월 1일부로 전면 폐지했습니다. 출산장려금이 폐지된다는 소식에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스페인의 산부인과들은 유도분만을 호소하는 산모들로 가득 차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좌파 정당의 총리가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치게 된 것은 그만큼 스페인 경제가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긴축재정 외에는 대안이 없는데도 스페인 국민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복지정책의 달콤한 맛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경제가 이 지경에까지 온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뿌리에 원인이 있습니다. 즉 '너무 늦게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점입니다.

복지병에 걸려 치명적인 국가 재정위기가 닥쳐오는 줄도 모른 채, 지금까지 '복지'라는 과실을 만끽해 온 스페인은 이제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무마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작금보다 더 철저한 분석과 합리성에 의거하여 사회복지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야만 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더욱 내실 있고 체감도 높은 정책효과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복지정책의 우선순위와 정책내용의 바람직한 결정을 통해 복지예산 배분이 합리적으로 이뤄지면서 선순환적인 사회복지정책과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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