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근 나눔타임즈 주필]
일본의 잃어버린 40년 제3부
아베의 등장
2012년에 야심차게 재등장한 아베 정권이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종식시킬 것을 일본국민들은 확신하였다. 그만큼 그는 강력해 보였다. 아베 정권이 지난 20년에 10년을 추가하여 다시 잃어버린 30년으로 연장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충격도 초래한 광범위하게 작용한 사회현상이었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 사회는 가득이나 보수적 성향인 민족이 더욱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경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도한 저축을 하게 되었고, 이는 소비 트렌드를 변화시키게 되었다. 일본의 저축율은 세계최강이다.
그로 인해 일본의 소비자들은 '소비 위축' 현상을 겪게 되었고, 이는 경제에 더욱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백화점과 쇼핑몰은 한때 대대적인 세일을 하고도 손님이 없었던 날이 많았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일본잃어버린30년이라는 두려움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아베노믹스
아베는 2012년에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재탈취하여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즉각 일본은행 총재를 갈아치웠다. 신임 쿠로다 총재는 아베와 함께 일본경제정책을 책임지는 키맨으로서 아베노믹스의 조타수 역할을 하였다.
아베노믹스란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내세운 경제정책으로 일본의 침체된 경제를 극복하기위한 야심찬 전략이다. 세 가지 화살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한 정책은 통화정책, 재정정책, 그리고 구조개혁 세 가지를 말한다. 세 개의 화살은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내려오는 경구로 한 개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세 개의 화살을 뭉쳐놓은 것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다는 단결과 협력의 뜻이 내포된 말이다. 이는 일본의 거시경제를 활성화하고,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며, 성장가능성을 높이는 목표를 가진다.
아베의 세 개의 화살
첫 번째 화살인 통화정책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일본은행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자금을 푸는 것이다. 이는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아베는 당시 ”화폐제조국의 윤전기를 마구 돌려 돈을 찍어내야 한다“고 공언하면서 양적 완화를 강력히 추진하였다.
두 번째 화살은 재정정책으로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국민들의 소득지원을 도모하는 것이다.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은 노동시장과 산업구조를 개편하여 기업환경을 개선하여 일본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아베노믹스는 초기에는 일본경제에 다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주식시장 활성화, 실업율 감소, 소비 활성화 등 경제지수 변화가 눈에 띠었다. 실로 일본경제가 오랜만에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그것은 착시현상으로 밝혀졌다.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디플레는 개선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의 지속으로 노동력은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한 마디로 힘과 성장동력이 너무 부족했다.
사토리 세대, 삼포세대, 탕핑족
이러한 일본의 장기불황 속에서 당시 일본 젊은이들과 사이에서 유행한 말은 ‘사토리’라는 말이다. 사토리는 ‘도를 통한 도사’라는 뜻인데, 이들 청년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돈이나 출세도 포기한 도사같은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이라는 말이다. 아무런 욕망도 없고 섹스조차도 무관심하고 해외여행 같은 것에도 무관심한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삶이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성공한다는 공식은 이제 없어진지 오래다. 결혼도 포기한 마당에 알바로 약간의 돈을 모아서 단칸방에서 살며 인스턴트 음식 먹으며 살아간다. 하기사 좋은 작장이래봤자 30년전 월급이 지금까지 그대로 정지된 상태다. 일류 직장 월급이 여전히 20몇 만엔으로, 당연히 실질소득은 30년 전보다 절번이상 감소했다. 일본의 완전고용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한국의 연애 결혼 아이를 포기한 삼포 세대나 중국의 공산당에 소극적으로 저항하여 드러누어 잠이나 자자는 탕핑족과 거의 같은 개념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좌절감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뤄야할 중요한 문제다.
아나로그 신화
일본은 어쩔 수 없이 20세기의 패러다임인 아나로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20세기 벽두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100년 이상 아나로그 성공 신화를 써왔으며, 아직도 그 신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21세가의 패러다임인 디지털 사회로 나가려해도 안 된다. 불가능하다. 그들 사회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전자 디지털 정부를 위해 디지털청을 만들고 혁신을 도모해도 1,740개(한국은 243개)에 이르는 모든 지자체의 서식이 전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서 간단한 가족관계증명서 하나 띠려해도 그 지방으로 출장가야만 한다. 지방으로가려면 기차표 검사요원한테 일일이 검사맡고 지자체에 도착해서 한참 기다려 지방공무원들이 문서고에 가서 간신히 찾아낸 원본서류를 카피해서 도장 받고 나서야 된다. 간혹 디지털화된 지방에서는 90년대에 사용하던 플로피 디스크에 보관된 것을 프린터에 인쇄해서 도장받는다. 이를 두고 그들은 디지털화 돼서 엄청 편해졌다고 말한다.
일본사화가 외국의 디지털 전문가들에게 매년 지불하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그 기업의 횡포는 말도 못한다. 신문사의 시스템도 비슷하여 현장에서 기사 작성 후 본사로 들어가서 다시 작성하여 제출하고 수정하여 입력한다. 우리 기자들이 이것을 보면 기절초풍한다. 이것이 정말 오늘의 일본 신문사란 말인가?
선거 시에는 투표용지에 한자로 된 후보자 이름을 일일이 쓰고나서 투표한다. 신인 후보자의 이름은 거의 모른다. 정치신인들의 정계입성은 힘들다. 아베 같은 2세 정치인이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일본의 디지털 혁신은 정말 요원하다. 최근 한국의 주민등록증 같은 ‘마이 네임 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서 의료보험증 기능도 넣어서 시행하려 했지만, 국민들의 무관심으로 1인 당 3만 엔씩 지급하여 가입을 유도하고 있지만 잘 안 된다. 카드의 콘텐츠도 가끔 엉뚱한 사람과 내용이 나와서 사람들의 불만이 너무 많다. 일본의 진정한 디지털 혁신은 가능할까? 그러나 일본사회는 별로 디지털화를 원치 않는다. 아나로그가 편하고 그들의 적성에 맞기 때문이다. 황혼의 사무라이는 산화될지언정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한다. 그것이 일본이다.(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