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근 나눔타임스 주필]

‘거인의 어깨’

딥시크의 리더 량원펑의 지난해 7월 IT 매체인 안융(暗涌)과의 인터뷰도 화제가 됐다. 그는 “중국의 AI와 미국 사이에 1~2년 격차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갭(gap)은 독창성과 모방의 차이”라며 “이를 바꾸지 못하면 중국은 영원히 추종자에 머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엔비디아의 리더십은 한 회사의 노력만이 아닌 전체 서구 기술 커뮤니티와 업계가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라며 “중국의 AI 발전에도 이러한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언론은 “딥시크가 미국의 오픈AI 모델 기술을 훔쳤다는 의심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진솔하게 답해달라”고 물었다면서 딥시크의 답변을 공개했다. 딥시크는 “휴, 이런 의혹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다”면서 “마치 누군가 교실에서 갑자기 ‘너 숙제 베꼈지’라며 몰아붙이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분명 밤을 새워가며 직접 문제를 풀었다”면서 “AI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것 아니냐”라고 덧붙였다. ‘거인의 어깨’ 비유는 학문의 발전이 독립된 개인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기존 성취 위에 올라탄 것이라는 의미로, 아이작 뉴턴이 한 말이다. 실로 하늘 아래 완전 독창적이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연히 미국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다. 아니 초상집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의연하게 대응했다. 그는 “이는 중국이 조장한 것이 아닌 모두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라면서 “중국의 종합적인 기술력이 미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나, 대단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번에 입증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이를 카툰 한 컷으로 표현하기를, 가면은 웃는 모습이지만 그 안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트럼프 정부의 AI·가상화폐 정책을 총괄하는 차르(총수)로 임명된 데이비드 색스는 지난 2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독점 모델을 이용해 기술을 개발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며 지적재산권 침해 의혹을 제기했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정부의 향후 대책의 방향이 여실하게 나오는 장면이다. 이제 미중전쟁은 시작됐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한 마디로 집약하면 “중국 때려잡기”로 요약하는 언론이 많지만, 이렇게 갑자기 전쟁이 시작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중국의 젊은이들의 도발로….

‘미중AI전쟁’이 아닌 ‘중국의 오픈소스 모델이 미국의 폐쇄형 모델을 능가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의미심장한 해석이 나온다. 그것은 AI 기술의 이론적 기틀을 세운 4대 석학들인 제프리 힌턴(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얀 르쿤(뉴욕대 교수), 앤드루 응(스탠퍼드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 등의 반응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딥시크 현상을 단순 패권경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오픈소스(개방형) 모델이라는 딥시크의 특징이 AI 개발 경쟁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컴퓨터 비전 분야의 석학인 얀 르쿤 메타 수석AI 과학자 겸 뉴욕대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딥시크의 높은 성능은 ‘중국이 미국 AI를 능가한다’가 아닌 ‘오픈소스 모델이 폐쇄형 모델을 능가한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픈소스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미리 짜놓은 코드를 온라인에 공유하고 이를 각자의 프로그램 개발에 자유롭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르쿤 교수는 “딥시크는 기존 오픈소스 모델인 메타의 ‘라마’ 등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다른 이들 역시 딥시크의 오픈소스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이게 바로 오픈소스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AI 분야에서는 오픈AI의 챗GPT 시리즈, 구글 제미나이 등 기술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폐쇄형 모델이 선두주자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딥시크-R1이나 라마 등이 오픈소스 모델 특유의 확장성을 이용해 빠른 추격을 시작했고, 궁극적으로 AI개발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게 르쿤 교수의 분석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폐쇄형 전략을 고수하는 표면적 이유는 AI의 할루시네이션(환각) 위험으로부터 사용자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한 탓에 원천기술을 무료로 공개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폐쇄형 전략은 AI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 정치권의 정책과도 일치한다. 벌써부터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딥시크 여파에 대응해 ‘미중 AI 기술교류 금지 법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AI칩의 중국 수출을 넘어 코드 공유까지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오픈소스모델이 답이다?

그러나 딥러닝 분야 세계적 석학인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에 대해 “미국이 오픈소스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를 고수한다면 중국이 AI 공급망을 지배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픈소스 모델이 AI개발의 주요 트렌드가 됐지만 변화를 읽지 못하는 미국 정부를 꼬집은 것이다. 응 교수는 자신이 설립한 AI 교육 플랫폼 ‘딥러닝닷AI’에 공개한 글에서 “오픈소스 모델은 개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딥시크 같은 저렴한 개방형 파운데이션(기초) AI 모델은 개발 접근성과 비용을 크게 낮춰 AI 의사나 법률보조원 등 다양한 응용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생성형 AI모델 개발 비용이 줄어들고 더욱 효율화될 것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힌턴 교수는 영국 방송사 LBC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에 대해 "AI의 효율적이고 빠른 발전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는 AI의 학문적 토대를 세운 공로로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힌턴 교수는 그러나 "딥시크 V3의 개발 비용이 약 557만 달러(약 80억 원)라는 것은 최종 훈련 단계에 들어간 비용만을 설명한 것으로 다소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딥시크가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강력한 AI 모델을 만들려면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응 교수는 "딥시크가 최적화를 통해 저비용 혁신에 성공한 만큼, 빅테크 기업들은 ‘과장 광고’를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의 번영의 성패를 좌우할 분기점을 맞이하는 딥시크 사태는 미중 패권전쟁인가 아니면 오픈 시스템이냐 폐쇄형 시스템이냐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성의 대결인지를 판단할 때이다.(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