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근
승인
2024.10.10 13:03 | 최종 수정 2024.10.11 09:36
의견
0
[강철근 우리나눔 주필]
1. 우리시대의 정의
그들은 내 얼굴애 비친 연민을
공포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오해는 오만일까? 편견일까?
오만과 편견
미국의 프로야구선수 행크아론은 인종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난 당시 최초의 흑인선수다. 그에게는 야구할 기회가 절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기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형이 던져주는 병뚜껑을 막대기로 때리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는 다 아는대로 베이브루스 이후 가장 홈련을 많이 때린 선수가 되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행크아론의 스토리야말로 백인사회의 가득찬 오만과 편견을 말하는 것이다.
흑인들은 야구를 할 수 없다는 혹은 야구를 해선 안돤다는 오만과 편견의 대표적 사례.
그의 썩세스 스토리에서 특기할만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누구던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얼국 색이야 뭐던지 능력만 있으면 다 된다? 그러나 그것은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적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수사일뿐이다.
행크아론의 이야기에는 전혀 다른 것이 있다. 그들 흑인들에게는 오직 홈런을 때려야만 벗어날 수 있는 인종주의의 깊은 그늘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기회의 평등이 말하는 수사는 정치적 허울이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이상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선(Common good)을 이루기 위하여는 말하여지지 않는 수만은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노력은 결단코 쉽지않은 장벽을 넘고 장애물을 치워야하는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좋은 사회는 나이나 가난이나 질병 같은 노약자의 장벽을 없애고 탈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 향상은 쉽게 넘을 수 있는 장벽이 아니다. 흔히 쉽개 말하듯 ”기회의 평등“이나 ”결과의 평등“은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나 공산사회주의 이상으로 대변되는 두가지 개념, 그것만이 우리의 이상이 결코 아니다,
전통적으로 말하는 기회의 평등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은 이제와서 보니 착각이었다. 시민사회의 지도원리였던 자유는 알고보니 능력주의적 오만이었다. 그들으 자신의 능력으로 얻을만한 것을 얻었다는 자만심의 결과였다. 남은 것은 패배한 자들의 자격지심이었다. 그 승리와 패배는 진정 공정한 것일까? 엘리트층에 대한 남은 자들의 분노가 민주주의를 위험수의까지 밀어낼 때 공동선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위태로워진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 또는 자기충족적인 사람일수록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 어렵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갖추어야할 시민적 감수성은 부지불식간에 공동선에 대한 접근조차 불가능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이야기 해보자. 시민사회의 자유는 자기책임의 원칙하에 계약자유를 쟁취했고, 과실이 없으면 책임지지않는 과실책임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것은 20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공동의 책임과 이익을 추구하는 즉, 공동선을 추구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간다. 계약자유는 공정성이라는 전제하에 움직이고, 사회구성원 모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갔다.
다시 말해서 생존권을 보장하는 사회보장법이 출현하고, 무한정한 소유권에서 소득재분배라는 생각을 첨가하게 되었다. 과실책임은 무과실책임으로 바뀌어 과실없어도 동료시민을 보호하는 산업재해보장으로 변해갔다. 빈곤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지만, 빈곤과 노후의 보장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시민사회의 감수성으로 공동선을 추구하자는 인식이 넓게 퍼져갔다.
이제 정치권에서 부르짖는 ‘기회균등의 세상’이라는 허울은 벗어던지고 동료시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조건의 평등“을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신념이 나왔다. 불평등한 사회적 조건을 타파하여 정말 공정한 조건을 시민사회의 감수성을 가지고 찾아보자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진정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세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세상은, 드넒은 자동차길 옆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보도나 자전거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편안한 보도와 자전거길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그려나가는 일이다. 공동선을 위한 시민사회의 감수성을 조금씩 펼쳐나가는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을 없애는 일이다.
저작권자 ⓒ THE NANUM TIME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