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방문기 (모로코)

우리나눔신문 승인 2023.02.21 13:08 의견 0

인천공항에서 18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였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거의 사육 당하듯 자고 먹고를 반복하여 현지 시각 새벽2시경(한국시간은 오전10시경)에 호텔에 들어가서 죽은 듯이 잠을 청했습니다.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는 기대와 희망도 너무 피곤한 몸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침이 밝아 오면서 세상은 확 달라졌습니다. 넓고 푸른 대서양 바다를 둘러싼 신비로움이 감도는 도시의 모습은 무척 평화스럽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카사블랑카라는 말의 뜻은 하얀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가이드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하얀 집과 하얀 파도. 바닷가 주변에서 향긋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나는 열심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제 해외여행은 일상화 되어 있기에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별로 없었으나 기관방문의 스케쥴만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경험이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방문기관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보았으나 영문으로 된 내용이 없어 그림만 적당히 보고 현지에서 부딪히면서 우리나라와 그곳의 사정을 비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모로코는 길거리에 휴지와 담배꽁초가 많았고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였으며 전력사정은 좋지 않아 밤에는 정전이 자주 발생 되어 경제 성장이 멈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상징인 왕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어 있었고 엄청난 부를 지녔지만 정작 길거리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젊음 사람들이 즐비하였고 도심 곳곳에 쌓인 쓰레기더미에서는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 사람들은 키가 큰 편이어서인지 화장실 남성용 소변기가 높게 설치되어 있어 우리 남자일행은 매우 곤욕스러웠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고아원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근무하는 직원들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었으나 시설 면에서는 숙소와 교실 이외에는 매우 열악해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유치원 과정은 고아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키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은 인근 공립학교로 보내어 교육시키고 있었습니다. 내부 유치원을 보면서 몇 년 전 가까운 지인의 자녀가 유치원 통학버스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일이 생각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우리나라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었고, 우리 기업 간판이 눈에 띄면서 여기까지 와서 비즈니스 하는 동포들이 자랑스러웠고 부디 사업에 성공하여 본인도 잘 되고 국위선양에 기여하기를 기원했습니다. 첫 방문지는 시내에 있는 고아원이었습니다. 모로코 공주가 설립한 곳으로 시설이 굉장히 깨끗했습니다.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절대 놀게 하지 않고 모든 연령의 아이들을 수준에 맞는 학습을 시키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실제 수업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입양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고 입양조건으로는 부모의 종교가 이슬람교이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이 눈에 띄게 보이지 않아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무슬림은 여자 아이를 시설에 맡기기를 꺼려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준비해 간 학용품을 전달하는데 무척 좋아하면서 한국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크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다가와 무얼 달라고 하는데 한국 관광객이 오면 볼펜을 달라고 조른다고 했습니다. 가끔 가이드는 한국에서 모나미 볼펜 한 다스를 사다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 무척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대 도시 페스로 이동하는 동안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을 보았습니다. 모로코는 겨울이 우기이기 때문에 11월에 밀밭에 뿌린 씨가 1월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장면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땅에 밀이 자라나고 양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빽빽한 아파트 숲속에서 일정한 생활패턴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남과 함께 오손도손 살고 싶다는 노래 가사로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모로코에서는 여성복지 차원에서 한 남자가 여자 4명을 아내로 둘 수 있다고 합니다. 고아원에서도 느꼈지만 여자들이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문화에서 여성의 처우를 위해 한 남성이 4명의 여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자 지방으로 가는 국도변에는 집을 짓다가 중단한 것처럼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재 세 번째 네 번째 부인 모두 공평하게 집을 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철근을 남겨 두었다가 부인을 얻을때마다 2층 3층을 올린다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법으로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어 있지만, 우리 선조들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첩을 두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성복지 차원에서 일부다처제가 관습처럼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 차이라고 이해할 수밖에는 없겠지요.

고대도시 페스는 천년이상의 세월 동안 과거와 공존하며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아주 느리게 천천히 진행되는 곳이기에 낯선 이방인의 방문은 커다란 구경거리가 된 듯했습니다. 저녁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마을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불편하고 복잡하고 좁은 골목 도로, 꼬불꼬불 골목으로 이어진 동네는 도저히 현지 가이드의 도움 없이는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도저히 이삿짐을 나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에 허름한 집들이였지만, 식사를 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니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넓은 마당 겸 거실과 사각형 구조로 빙 둘러진 방과 주방. 벽에는 타일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샹들리에와 고풍적인 가구들이 아주 멋지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집에서 대대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외관 보다는 집안 꾸미기를 좋아하고 가족들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고 삽니다. 술을 먹지 않고 차를 즐겨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답니다. 느리지만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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