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와 정치인의 사이에서

우리나눔신문 승인 2023.02.06 13:51 의견 0

얼마 전 이재오의 『정치성찰』 이란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교육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의 몇몇 문제의식을 빌려와 저의 언어로 몇 자를 곱씹을까 합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교육과 관련한 것들이 도처에 산재해있습니다. 그러나 사공이 많은 만큼 배가 산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예민해져야 합니다. 특히 현재의 교육문제는 일단 획일화된 교육의 틀을 탈피해야 하는 것이고, 대학의 서열화와 과잉학력 문제, 학교 내에서의 왕따 문제 소위 '빵셔틀'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그것을 방치하는 무관심을 해소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반값등록금 같은 현안에 대해 대학생들이 하나의 입술이 되어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리고 학생의 관점, 교육자의 관점, 정치인의 관점등 무수한 관점들이 개입하면, 사회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만큼 서로 악수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많은 부딪힘이 있습니다. 때문에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가치의 상충과 함께 제한된 예산에서 어떤 사안이 더 급하고 중요한 지를 결정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는 물론 정치인으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교육에 대한 근심과 걱정은 여느 교육자 못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같이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진 시대에서 교육에 대해 논의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학생들은 학원에서 밤이 늦도록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학교에 와서는 졸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아주 대조적인 현상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말을 잘 듣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선생님들은 그들의 가정교육을 탓하거나 지금 교육의 현실을 들먹이며 푸념을 쏟아놓습니다. 몇몇은 그런 학생들을 체념하고 가만히 방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건이 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고액을 쏟아 붓습니다. 학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그들에 비해 심히 뒤쳐집니다. 모두가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실이 짓누르는 무게는 상당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삶의 괴리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다면 그러한 사회구조를 뛰어넘어야만 진정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불균형을 극복하고, 학교와 선생과 학생이 각자 자기의 역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권위가 서는 선생님도 없고, 학교에서만 조는 학생은 계속해서 졸고, 학원을 못가는 학생은 끝까지 학원을 못가기 때문입니다.

교실붕괴의 한 원인으로 입시지옥을 꼽을 수 있는데, 사교육비문제를 부추기는 우리 교육문제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대학을 강요하고, 그것도 좋은 대학을 선호합니다. 거기엔 학생 한 개인의 삶, 사고, 인생관, 적석, 취미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성적순으로 자른 학생들을 각자의 '수준'이라는 이름 아래 대학에 집어넣게 됩니다. 마치 소고기나 돼지고기의 품질을 가르기 위해 넌 1등급, 넌 2등급하고 도장을 이마에 찍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사회적인 성공이 좋은 대학에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에 대해 더 유리한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꼭 그렇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구조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일류대는 아니여도 일단은 사회가 무조건 대학, 대학, 대학만을 고집하니 많은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거기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빚을 지면서도 학비를 대고, 학업에 몰두할 시간을 쪼개가며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과잉학력과 과잉등록금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우리가 꼭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걸까요? 사회는 말합니다. 꼭 그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안 돼'라고 말입니다. 사회가 스스로 우리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구조를 만든 것은 바로 기성세대입니다. 저도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선배로서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현재의 모든 학생들이 밟은 과정을 대부분 거쳤기에 저는 그 심정을 이해합니다. 학생들의 비애와 괴로움은 학생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힘겹습니다. 그런 학생들의 짐을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저는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즐기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또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자문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몇몇 학생들은 수시로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를 물어보면 몇몇 학생들은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손을 들도록 했습니다. 두세 사람을 빼놓고는 전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고사리같은 손들이 물결을 치니 저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아르바이트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편의점, 호프집, PC방, 당구장 등.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심야의 고된 노동들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4천원 남짓한 돈을 받고 일을 합니다. 여기서 많은 불평이 이루어졌는데,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몇몇 학생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나 자리가 아쉬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울며 겨자를 먹고 있는 학생들을 코앞에 두고도 저는 사회전반에 대해 이다지도 무감각했던 것입니다. 최저임금이란 정말 말 그대로 최저임금인데 그것이 마치 평균적인 금액으로 정당화 되고 고착화되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이들을 구제한다는 노력이란 실태조사와 정책연구에서만 그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형식적인 노력이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학생들의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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